Posted on

보더리스 사이트; Border-less.site

  • 기간: 2021년 3월 17일 ~ 5월 9일
  • 장소: 문화역서울284
  • 온라인 전시: www.border-less.site
  • 관람 안내
    *네이버 예약 후 관람 가능합니다.
    *각 회차 입장 인원에 여유가 있을 경우 현장 등록 후 입장도 가능합니다.

전시를 만든 사람들

  • 기획: 정림건축문화재단
  • 주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 예술감독: 박성태
  • 큐레이터: 김보현
  • 초청 큐레이터: 김성희
  •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이준영, 최고은
  • 리서치: 안창모
  • 디자인: 강문식
  • 번역: 예스모어
  • 참여작가: 김보용, 김주리, 김태동, 김황, 라오미, 맛깔손, BARE, 서현석, 신제현, 이원호, 이주용, 이해반, 임동우, 전소정, 정소영, 최윤, 코우너스, 황호빈

기획의 글

<보더리스 사이트; Border-less.site>는 문화역서울 284의 <DMZ>와 <개성공단>에 이은 지역연구/전시 프로젝트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경의선 열차가 도라산역을 지나 개성-평양-신의주-단둥-베이징으로 이어지니 신의주와 단둥을 주목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신의주와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공식적/비공식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접경 지역이다. 한반도와 중국의 군사요충지고, 조선 시대 6백 년간 1천 회 이상 양국의 외교 사행이 오간 한중 교류의 현장이다. 일제강점기 압록강 중상류에 수력발전 댐인 수풍댐이 세워지고, 지금은 북한과 중국이 공동 관리하고 있는 협력의 장소다. 그리고 북한의 대외 협력과 교류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국제 시장의 길목이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의 불완전함을 상징하는 붉은 낙인이 찍힌 도시이기도 하다.

경계 없는 경계가 그어진 신의주와 단둥, 그곳에서 활발하게 이어져 온 교류와 월경의 흔적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단둥에는 평양 직배송 업체가 성업 중이고, 당일치기 신의주 여행객들이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그리고 삼성 모바일폰으로 평양과 서울에 전화를 거는 한국 사람, 조선족, 북한 사람, 북한 화교 등이 이곳에 함께 살고 있다. 한국말을 중심으로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규모가 늘거나 줄고는 있지만 그 삶의 역동은 여전히 힘차다. 그럼에도 단둥은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도시다. 역사 교과서와 북한발 뉴스의 배경으로 종종 접할 뿐이다. 오히려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자세히 알려 들지 않는 곳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예술 작업을 통해 ‘경계 없는 경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오랫동안 기각해온 월경의 상상력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그래서 흥미로웠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globalization)의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공동체의 자활과 네트워크도 그중 하나로 거론된다.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변화할 동북아의 정치경제적 지형에 대응하는 신의주와 단둥의 공생적 관계는 향후 ‘공유거점도시’로서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시팀은 봤다.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두 도시를 들여다보는 것이 변화를 향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지금 시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유의미한 질문이 되기를 바랐다. 무질서한 접경의 지역성이야말로 창조성을 갖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신의주-단둥 지역을 사회학, 문화인류학, 건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시작됐다. 지난해 한성대 박우 교수가 만주 지역의 100년 역사를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되돌아봤고, 건축역사학자인 안창모 교수는 경의선의 역사, 단둥의 근대건축물, 수풍댐을 비롯한 도시 발전 과정의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두 도시를 과거와 현재를 살펴봤다. 또한, 기획팀과 참여작가들은 서울대 문화인류학과의 강주원 박사와 함께 현지 리서치 답사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18명의 작가는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중국의 단둥에서 주요 경계 지역을 경험하고, 그곳에 사는 ‘가까운 타인’들을 예술 작업으로 불러냄으로써 우리와 타인, 타인과 타인을 연결하고자 했다.

쌍둥이 도시에 담긴 월경의 잔해들을 좇다 보면, 주파수가 잡히는 곳에서는 신호로 들리나 그곳을 벗어나면 잡음이 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된 것을 알 수 있다. 신호와 잡음의 혼란 속에서 ‘함께 번영’의 가치가 결국 싸늘한 역사 속 이벤트로 남는 것을 목도했고, 그 경계 너머를 꿈꾸는 것은 여전히 힘겨운 일로 판명됐다. 그러나 연결과 연대의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한 신의주-단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다양한 시선으로 살펴보고, 경계가 갖는 한계에서 탈주하는 예술적 상상을 통해 경계 너머의 가능성과 의미를 확보해보고자 했다. 우리는 어떤 위험 앞에서도 아이러니와 냉소주의의 다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전시 구성

본 전시는 리서치 섹션을 도입부로 삼아 ‘접경 지역, 혼종의 시간’, ‘타자화, 인식의 사각지대’, ‘경계에 대한 수행적 시도’ 등 세 개의 축을 따라 진행된다. 신의주-단둥 지역에서 수없이 이루어졌던 월경의 기록과 잔해를 재맥락화한 작업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출품작들은 본 전시를 위한 커미션 작업으로 어떤 완결성을 기대하기보다는 강렬한 경험의 후유증을 다양한 층위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작업이 물리적 경계의 해체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막연한 심리적 경계를 흐리는 월경의 수행적 감상도 기대하게 한다.

지속된 분단이 만든 집단 탈출에 대한 꿈과 그 한계를 판타지 장르로 전환하는 최윤을 비롯해 김태동, 임동우, 라오미, 신제현, 코우너스, 맛깔손 등은 신의주와 맞닿은 단둥 지역의 혼종의 시간들을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 밖에 이주민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장소 기반으로 풀어낸 이주용의 <장소, 사물의 기념비>, 압록강 하구 습지의 축적된 시간을 호명할 수 없는 형상으로 형상화한 김주리의 <모습(某濕)> 등은 국경지대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접경 지역의 풍경과 장소에 공간적 상상을 더한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다.

이원호의 <모씨 이야기_borderless>는 단둥에서 20년간 한인회장을 했다고 말하는 개인의 무용담이 국가적 사건들과 구분되지 않는 지점을 드러내 보이고, 서현석은 <안개>라는 작업을 통해 가까이 갈수록 견고함을 잃지만 관습적으로 확고하게 규범화되는 경계를 탐색한다. 황호빈과 김황도 첨예한 갈등과 긴장 속에 있는 이 지역을 보다 수행적으로 사유하면서 인식의 사각지대에서 놓여 망각의 시간 속에서 섞여 들어간 경계에 대한 사유를 또 다른 이야기로 불러낸다. 멀리 있다고 믿었지만 의외로 가까이 있는 타자에 대한 미디어 작품과 퍼포먼스로 구성된 ‘타자화, 인식의 사각지대’ 섹션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관통하는 개개인의 서사를 양면적으로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바래, 정소영, 김보용, 전소정 등은 시간이 정체되어 있기보다는 빠르게 지나간 한 장소를 기록한다. 정소영은 7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조형 작업으로 변환한다. 남과 북의 연주자가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기반으로 한 곡을 새롭게 해석한 전소정의 <이클립스>는 서로 다른 삶이 예술적 상상력으로 조우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경계에 대한 수행적 시도’에서는 접경 지역이 오랫동안 배태하고 있는 특징이 앞으로 우리 안에서 어떤 가능성으로 등장할 것인지 엿보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